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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1
노병기    2013-01-25 15:54:10   
(✢설교) 누가 더 기초소양이 좋은 사람인가? -양심의 소리를 잘 듣는 자

 


2013년 1월 23일 수요기도회 {녹취: 이성희}

 

누가 더 기초소양이 좋은 사람인가?

 -양심의 소리를 잘 듣는 자





* 누가복음 15장 1~7절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기초소양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수가 많습니다.


“아주 험하게 산 사람들, 또 기초소양이 겉으로 얼핏 보기에 아닌 듯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고 봐야 되느냐?” 심한  경우는, “전도도 해서는 안 되느냐?”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기초소양에 대해서 접근하기 시작하면 한 명도 제대로 전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변에 맘에 드는 사람이 좀처럼 없습니다.


겉으로 얼른 봐서 이 사람은 희망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속단하는 것은 상당히 좋지가 않습니다.



    1.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회개의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5장 29-30절을 봅시다. 레위가 세리 출신입니다.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30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29~32)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상식을 뒤엎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죄인이라고 알려진 세리와 친하게 지내고 또 창기들을 멀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아주 공격을 많이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필요하다.”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실 정도로 특별히 죄인들에 관한 관심이 많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듣기 전에는 인간은 누구나 큰 죄인이든 작은 죄인이든 하나님 앞에 50보 100보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 듣기 전에는 다 죄인입니다.


자신이 죄를 많이 지었다고 예수님께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얼마나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고 부족을 깨닫고 예수님 앞에 회개하러 나아오느냐 마느냐가 중요합니다.



  2. 그런데 세리와 바리새인 중에 하나님 앞에 누가 더 큰 죄인입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도 공격하고, 세리도, 창기도 공격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리새인들이 평소에 나는 의롭다 하는 자들이니까, 독선에 가득차가지고 ‘우리는 세리와도 같지 않고 창기와도 같지 않은데 예수라는 사람이 메시아라고 하면서 어떻게 죄인들과 같이 지내느냐’ 하며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여러분 복음서를 보면 아시겠습니다마는 결국은 신양성경의 전체가 예수님과 바리새인과의 전쟁입니다.


오늘날에도 보면 그런 위험들이 항상 있는데 누가 진짜 더 죄인입니까? 예수님 보시기에는 인간들은 다 똑같은 죄인인데, 이 바리새인들은 용서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오히려 “세리와 창기들이 너희보다 더 빨리 천국에 들어간다.”(마 21:31)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큰 대적이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자 중 하나입니까?


결국은 인간은 모두다 죄인인데 이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전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면의 양심의 소리에 더 둔감한 사람들이요, 더 악한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세리와 창기들 중에 하나님 앞에 양심의 가책을 갖고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온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 가셨습니다. 거기서 아마 창기 출신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자기 머리털로 닦고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 머리에 부은 일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칭찬을 하십니다.(눅 7:36-50)


지금 누가 더 큰 죄인이냐? 성경은 크게 대비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종교적으로 열심히 살고 사회적으로 존경도 받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겸손함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가득 찼습니다.


실제로 오늘날도 보면 양심의 가책이 없는,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종교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보시기에는 누가 더 의인인가 했을 때, 겉으로 직업적으로 봐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한쪽은 죄인의 대표자인 세리와 창기요, 이쪽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러 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이와 관련된 말씀이 굉장히 많습니다. 


한번은 성전에 기도하러 갔는데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따로 서가지고 “아 하나님 저는 이 죄도 범치 않고 저 죄도 범치 않고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였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였습니다.(눅 18:13)


예수님이 이 둘에 관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가 더 의롭다함을 받았겠느냐? 세리가 저보다 의롭다함을 받고 내려갔다.”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외적인 것이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도 보면 누가복음 15장 1, 2절까지 다시 한 번 읽어 보세요.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눅 15:1~2)

서기관하면 오늘날 신학교수들을 말합니다. 그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라고 하면 대단한 지위가 아닙니까?


우리가 성경을 더 잘 봐야 됩니다. 예수님이 지금 누구 편을 드셨느냐? 이것은 현재도 통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거울입니다.


오늘날도 보면 겉으로는 목회자다, 열심 있는 종교인이다, 신학교수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상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3.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마라”(요 7:24) 하셨습니다.


거기에 관련된 말씀이 굉장히 많습니다. 겉으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종교적 일도 하고 사람들의 존경도 받고 하니까 괜찮은 듯 했지만, 예수님이 마태복음 23장에 하신 말씀처럼 “너희는 회칠한 무덤이다. 평토장한 무덤과 같아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나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겉으로는 회칠한 무덤 같이 너무너무 예쁘게 하니까 그 속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겉으로 사람을 볼 때, 이 사람은 현재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신분과 지위에 있으니까 기초소양이 좋을 것이다, 또 이쪽 사람은 현재 모든 사람이 보기에 아주 손가락질하는 위치에 있으니까 안 좋을 것이다, 이렇게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4. 기초소양을 보라는 것은 그 속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 속에 과연 양심이 살아 있느냐?”를 보라는 것입니다.


비록 세리와 창기의 삶을 살더라도 그 속에 양심의 고통이 있어서 “내가 참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내가 의의 길을 걸어야 되는데” 하는 강력한 양심의 소리를 듣고 여기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겉으로는 멋지게 보이지만 속에는 전혀 양심의 가책도 없고,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도 없고,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가 좋아 하시겠습니까? 복음서에는 이런 내용이 매우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겉으로 어떻다 저렇다 할 수 없습니다.



  5. 마음속을 봐야 하는데 그런데 이 속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복음을 전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복음을 전해보면 그 속의 양심의 소리를 듣고 양심의 고통을 받았던 사람은 너무너무 기뻐서 예수님께 나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1절을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했습니다. 아마 이 당시에는 어려움이 많은 시대니까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어서 이런 죄인의 길에 서는 사람이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정말 기초소양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겉을 보고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참된 구원의 복음, 거듭남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딱 전해보면 양심의 고통을 느꼈던 사람은 아주 기쁘게 옵니다.


아까 옥합의 그릇을 깨트린 여인처럼 너무너무 예수님이 고마워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그 귀한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께 부어 드리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기초소양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복음을 전해보면 기꺼이 그것을 받아 들이냐 안 받아 들이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초소양은 겉을 봐서는 안 되고 속 기초소양을 봐야 됩니다. “인간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 다른 영혼의 구원에 무관심하고 냉담한 것이 바리새인의 영입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 말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그렇게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게 없습니다. 자기도 구원 못 받았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도 없습니다. 영혼에 대한 긍휼도 없고 그냥 공격하기만 바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보면 바리새인의 영을 가진 사람이 있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영혼을 볼 때 불쌍한 마음으로 긍휼한 마음으로 저 영혼이 정말 하나님의 구원의 자리에 갔으면 하는 그런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 자체에 대한 아주 순수한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사람이 있고 아예 교만해 가지고 예수님도 없고 구원도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고 그냥 무조건 공격 일변도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는 사람은 쉽게 말하면 다 바리새인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에 99마리의 양을 놔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서 온 산을 다니는 그 마음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의 마음이죠.


그래서 한 영혼을 찾으시는 그 마음, 그 마음을 이렇게 예수님이 실감나게 잘 표현 하셨습니다.



  7.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은 악인이 죄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3장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겔 3:11)

야~ 대단한 말씀 아닙니까?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더 이상 맹세 할 것이 없으니까 하나님은 자신의의 삶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긍휼한 마음입니다.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바리새인들은 그런 긍휼의 마음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긍휼의 마음을 꼭 가져야 됩니다.


여기에 보면 재밌는 것은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셨습니다. 악인이 계속 악인으로 있다면 구원 못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8.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이 풍부한 인격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에스겔서 18장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인격성이 많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결정론자들은 잘못 결정론에 치우치면 하나님을 마치 딱딱한 그런 마음을 가진 분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의 마음이 되는 길입니다.


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성경에는 하나님의 인격성이 강력하게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애당초 좌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 같은 사람이 뭐 하나님 앞에 어떻게 구원이나 받을 수 있겠느냐? 나는 오히려 불택자가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성령을 받지?” 이러는 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항상 한쪽으로 치우치게 해서 ”아 나는 안 돼“ 예를 들면 ”나는 기초소양이 부족해“ 아니면 ”나는 불택자 일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하도록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정죄하기에 바빠 세리와 창기들을 냉혹하게 정죄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격성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악인이 그의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조금이라도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은 인자와 자비가 무궁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신데, “아 나는 안 될 거야. 나는 기초소양도 부족하고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그것은 결국은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 뺨 때리는 것 밖에 안 됩니다.


불효 중에 제일 큰 불효가 마음의 불효입니다. 불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엄청나게 “내가 악인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이러시는데, 하나님 앞에 “나는 구원 못 받을 거야, 나는 성령도 안 주실 거야.” 이러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 하나님이에요. 딱딱한 어떤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돌 바위처럼 그런 분이 아니에요.


우리처럼 사랑도, 근심도, 여러 가지 안타까움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감성이 풍부하면 풍부했지 우리보다 감성이 덜 풍부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도 여러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대화하듯이 우리가 세상의 어떤 사람한테 마음 편하게 대화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시니까 대화하듯이 “하나님”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자비와 인자하심이 무궁하시도다!” 계속해서 이런 말씀이 나오잖아요.


하나님은 자비와 인자가 무궁하시니까 그 하나님  품에 가서 “하나님 제가 주님 발 앞에 왔습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이러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하나님 마음을 잘 알아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마음을 전혀 모릅니다. 종교적 일을 하긴 하는데 전혀 사랑도 없고 긍휼도 없고 무자비한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겪어 본 바에 의하면 교역자들 세계도 그렇고, 종교인들이 오히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딱딱한 경우가 많아요.


하나님은 딱딱한 하나님이 아니고 은혜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아야 됩니다.


30절부터 봅시다. 

3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31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겔 18:31~32)


이것이 하나님의 진심입니다.



  9. 하나님의 인격성과 기초소양의 결정론, 즉 선택론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가 있습니까?


오늘이 수요일인데, 조금 깊은 신학적인 것을 살펴봅시다.


여러분 중에 아주 지적인 사람은 궁금해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정론이 있고 선택론이 있는데, 하나님의 인격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아주 쉽게 설명합니다. 그냥 둘 다 받아들이면 됩니다.


우선 하나님의 인격성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받아주시기를 강력히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기초소양의 요소가 있습니다. 택자와 불택자의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머리로 이것을 다 해석하려면 어려워요. 그런데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나님의 깊으신 성품과 또 오묘한 뜻을 복잡하게 함께 주셨느냐?


너무 쉬운 문제만 주면 사람들이 기도를 안 합니다. 겸손한 게 없어져요. 하나님께서는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에게만 해결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이 문제가 쉽게 해결이 됩니다.



  10. 마음이 옹졸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이런 해석에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얼마나 율법을 열심히 연구했던지 구약에도 없는 수백 가지 규례를 만들어서 섬길 정도로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정통하고 아주 철저했습니다. 심지어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 낳은 달걀은 먹어도 되느냐? 먹으면 안 되느냐?” 뭐 이런 것까지 연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일 중한 것을 모르는 거예요. 그것은 한번 봅시다. 마태복음 23장 23절, 아주 찾기가 좋습니다.


“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 23:23)


마태복음 23장 전부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질책의 말씀인데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십일조는 중요한 것이니까 확실히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그런 것을 안 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마태복음 5장 20절에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그랬을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죽기 살기로 율법을 지키고, 십일조, 십계명 이런 외적인 것은 지키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보면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둘 다 가져야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24절이 재밌습니다.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23:24)


이게 무슨 뜻입니까? 입에 뭐가 들어갔는데, 보니까 하루살이가 걸렸어요. 그것을 뱉어내고 약대는 삼키는 거예요.  뭐가 더 중요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당시 종교인들이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의는 여러분 알다시피 의로움! 인은 인자함, 사랑, 긍휼! 신하면 믿음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율법적인 것은 다 했어요. 율법적인 것은 보통 사람보다 많이 열심히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안 지키고 못하면 자기보다 못했다고 계속 욕하고 정죄하면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참소의 영은 비판의 영은 바리새인의 영입니다. 교만의 영이기도 하죠. 율법의 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하신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보면 우리 예수님의 뜻은 언제나 분명하고 단순하고 확실합니다. 의와 인과 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소한 것에 트집을 잡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 12:7)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간단합니다.



  11. 하나님의 뜻은 의와 인과 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성장반으로 모입니다만 우리가 예수님의 그 거룩하심을 본 받아서 의와 인과 신을 가진 사람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듭남이 무엇입니까? 거듭남은 간단한 것입니다. 회개해서 의와 인과 신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성령 받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복잡한 게 아닙니다.


과거에 의의 삶을 몰랐다하면 회개하고 의의 삶을 살고, 자비, 사랑, 긍휼이 없었던 삶을 살았다면 그렇게 살면 되고, 믿음을 못 갖고 살았다면 믿음을 갖고 살면 됩니다.


신앙의 요체는 바로 거기에 있는데, 이 바리새인과서기관 같은 거짓 종교인들은 평생 거기에 들어가질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인들 중에도 평생 신앙생활에도 거기에 못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99마리 우리의 양을 버려두고 갔던 그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간단한 겁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있느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고, 그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리새인의 영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귀한 진리를 친히 가르쳐 주셨는데 마음이 이토록 옹졸하니 그게 들리겠습니까?



여러분, 구원이 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의와 인과 신의 마음을 얻으면 그것이 구원입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핵심, 복음서의 핵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홍은주 : 2013/01/25    

기초소양의 분별은 확실히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보고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시간이 지나봐야 알게 되는데 우선 쉬운 분별방법이 있었네요!
아무튼 분별하기 애매한 사람은 일단. 우리의 거룩한 복음을 전해 보아야겠습니다^^


김세정 : 2013/01/25    

아멘!!!!! 아멘!!!!!! 늘 명료하고 분명하게 쉽게 전해주시는 목사님 말씀이 귀합니다 감사합니다!!!


전범열 : 2013/01/25    

창세기4장/9-가인, 사물엘하15장/6~8 압살롬, 예레미아3장/10절 유대백성,
마가12장/13~15 헤롯당사람들, 사도행전 5장/1~8 아나니아와 삽바리부부,
사도행전8장/13~23절 마술쟁이 시몬 마지막으로 제일 믿었던 예수님의 제자 / 가롯 유다.
(찾아보니 저의 정리 노트에 있더라구요.)
목사님의 가르침. 의와 인과 신..... 명심 하겠습니다.

오늘도 - 확실히 알고 정확히 보고 명확히 읽고 ~ 눈에서 빛이납니다.
주님과 목사님 덕분에 오늘도 눈에서 환하게 열리는 빛의 느낌을 받습니다. 아멘!


권소용 : 2013/01/25    

아멘!! 길찾은 어린양..어서 목적지에 도달해야겟습니다..목사님 감사드립니다..저를 믿어주세요..ㅠㅠ


이세용 : 2013/01/26    

아멘!!!


유리나 : 2013/01/26    

아멘..!!


김선희 : 2013/01/28    

아멘!!


김기호 : 2013/01/28    

"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아멘!!
은혜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의와 인과 신의 마음을 날마다 새기오며 증거하겠습니다^^


조운 : 2014/12/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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