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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1
황승욱    2017-03-21 00:08:10   
http://blog.naver.com/seunguk02
「자율 말씀 묵상 점검표」의 교회사적 위치: 상


올해를 시작하며, 2017년 목표를 몇 가지 정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순례하는 교회』를 정독하며 정리하는 것입니다. (2015년도에 최용환 선생님께서 감명 깊게 읽으셨다고 하신 적이 있지요.^^) 2월 말부터 하루에 조금씩 조금씩 읽어가고 있는데, 읽으며 들었던 생각들을 나누어 보면 좋을 시점일 것 같아 글을 써보려 합니다.


1. 회당

# 교권주의가 싹트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여 성경을 낭독하고, 교훈을 가르치고, 기도하던 장소였습니다. 기독교가 시작되던 그 시점에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지요. 곤잘레스의 『초대교회사』에 의하면 “최초의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새로운 종교의 추종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신앙은 유대교의 부정이 아니라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확신이었다. ... 최초의 기독교인들은 유대교를 부정하지 않았고, 자기들의 신앙이 오랫동안 고대해온 메시아에 대한 약속의 성취라고 확신했다.” (후스토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42쪽)


이 유대인들의 회당이 어떻게 보면 기독교 교회의 모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회당과 교회의 유사성 및 관련성은 명백하다(『순례하는 교회』 27쪽).” 의외로 회당은 모인 사람들의 자유로운 참여가 가능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시로 보면 종교지도자도 아니었음에도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실 수 있었던 것이지요(눅 4:15-24). 마찬가지로 사도들도 유대교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지위도 없던 사람들이었음에도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행 13:14 이하)


하지만 사도 시대 이후부터, 교회에는 교권주의가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 평신도들과 성직자들에 대한 차별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장로’, ‘감독’과 같은 사람들이 평신도들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질서가 있는데 이게 문제 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요?


# 오리겐과 프리스길리안의 이야기

오리겐(오리게네스)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세기 후반~3세기 중반을 살았던 그는, 지금은 기독교의 교부이자 위대한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당시에도 오리겐은 선한 영향력을 가진 “평신도”였습니다. 한 때 오리겐이 팔레스타인에 있었는데, 오리겐의 뛰어남으로 인해 그 지역의 감독들도 학생으로 와서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디미트리우스는 “평신도인 오리겐이 감독들을 가르친다”는 명분으로 그를 비난하고, 결국 오리겐은 파문되고 말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프리스길리안이라고 하는 사람도 오리겐과 비슷한 일을 당했습니다. 프리스길리안은 신앙을 갖게 된 이후, “평신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설교하고 가르쳤다.”고 합니다(64쪽). 브로우드벤트에 따르면 그는 “평신도가 적극적으로 사역하고 여성이 참여하는 성경 읽기 모임의 필요성을 역설 했으며, 경솔하며 세상적인 마음을 버리지 못한 자들과 함께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합니다(64쪽). 인격이 훌륭하고, 건전한 교리를 가지고 있었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평신도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가톨릭 교회에 의해 처형당한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 교권주의의 오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11:29).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 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질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합당한 일이고, 순종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질서를 주신 이유는 평신도의 영적 성장과 교제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사도시대가 지나면서 이런 오류가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고, 가톨릭화 되면서 이 현상이 더 심화되고 말았습니다.

    

2. 니케아 공의회

# 니케아 공의회의 오류

핍박을 받던 초대교회는, 312년 밀라노 칙령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종교가 되었습니다. 325년에 열린 니케아 공의회는 교회의 첫 공의회라고 합니다. 당시에 아리우스라고 하는 이단의 괴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던 사람이었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을 아리우스주의자라고 합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이 아리우스가 이단임을 결정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천명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당시 황제였던 콘스탄틴(콘스탄티누스)이 주관하였는데, 브로우드벤트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합니다.국가 권력에 의해 그 결정이 시행되었던 과정은 가톨릭 교회가 성경으로부터 벗어났음을 명백히 보여준다(46).” 라고 말입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될까요? 니케아 공의회 결정 2년 후, 콘스탄틴 황제는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습니다. 결국 아리우스는 복귀 되었고, 아리우스파 감독들이 교회를 차지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습니다. 펠라기우스는 어거스틴과 동시대의 사람입니다. 어거스틴과의 논쟁으로도 유명한 사람인데,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거기에 너무 치우치게 된 나머지, 하나님의 은총을 약화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죄를 부인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결국 교황 인노센트의 심판 아래 파문 되었다가, 그의 후임인 조시무스 교황 대에는 다시 복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정치적인 압박과 문제가 생기자, 조시무스는 다시 펠라기우스를 정죄하였습니. (교황무오설은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요. 교황이 무오하다면 왜 이렇게 결정이 왔다갔다 하는지!)

    

# 신약 성경의 사도들과 교인들의 모습

이 부분을 읽고, 신약 성경의 교인들과 사도들은, 교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들은 기도하거나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의뢰 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직무를 대신 감당할 사람을 뽑을 때도 그랬고(115절 이하), 일곱 집사를 뽑을 때도 그랬고(6:1-7), 바울과 바나바를 뽑을 때도 그랬습니다(13:1-3).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중차대한 결정과 운영을 인간적인 제도, 세상 권력에 떠 맡겨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실패하였습니다.

 

3. 수도원의 등장과 타락

가톨릭 교회가 타락하는 모습을 보이자, “거룩함과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추구하던(57)”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세상을 등진 사람들은 다시 모여 수도원을 세우고, 거기서 종교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교황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세속적 권력을 얻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싸움을 하면 할수록, 수도원 조직은 영적인 순수함과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추구하던 많은 사람들을 얻게(58)”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도원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체험하기보다는 조직의 규칙에 매여 있었던 것(59)”이며, 둘째는 처음에는 수도 생활로 시작했지만, 부와 권력이 쌓이자 이들도 다시 부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개혁의 주체에서, 개혁의 대상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안권민 : 2017/03/22    

오!다음 글로 넘어갑니다!


정도현 : 2017/03/25    

감사합니다~^^ 아주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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